결론부터. 창릉이 발표되던 날, 정부 자료에서 가장 자주 인용된 문장은 “자족용지가 판교테크노밸리의 2배 이상”이었습니다. 약 130만㎡의 일자리 땅을 품은, 베드타운이 아닌 신도시가 되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발표 7년째의 성적표를 글 상단 차트에 담았습니다. 창릉에 들어오겠다고 투자협약을 맺은 앵커기업은 아직 한 곳도 없습니다. 같은 기간 하남 교산은 3조원 규모 AI 클러스터를, 부천 대장은 SK 그린테크노캠퍼스와 대한항공 R&D센터로 약 2.2조원을, 남양주 왕숙은 카카오 AI 디지털허브 6천억원을 유치했습니다. 지난해 12월 고양시의회에서 “실질적인 투자협약도, 구체적인 유치 로드맵도 없다”는 지적이 나온 그대로입니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3기 신도시에 왜 기업이 먼저 오지 않는지, 이번 편은 그 구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미리 말해두면, 이 성적표는 끝난 경기의 결과가 아니라 전반전 스코어에 가깝습니다. 후반전에 준비된 카드들도 함께 보겠습니다.
1. 약속 — 130만㎡와 판교라는 비교 대상
2020년 3월 지구계획의 그림은 이랬습니다. 자족용지 **약 130만㎡**를 경전철 고양선(고양은평선) 역세권을 따라 몰아서 배치하고, 기업지원허브와 기업성장센터를 지어 직장과 집이 한 동네에 있는 도시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판교테크노밸리라는 비교 대상은 정부가 직접 꺼낸 것이었습니다.
숫자만 보면 근거가 없지 않았습니다. 서울 경계 1km, GTX-A와 경전철이 예정된 땅이라면 판교의 성공 공식을 옮겨 심을 수 있어 보였습니다.
2. 성적표 — 0건이라는 숫자의 무게
| 지구 | 앵커기업 유치 (협약·발표 기준) | 규모 |
|---|---|---|
| 하남 교산 | AI 클러스터 (2025.12 하남시 발표) | 약 3조원 |
| 부천 대장 | SK 그린테크노캠퍼스 (2023) + 대한항공 R&D센터 (2025) | 약 2.2조원 |
| 남양주 왕숙 | 카카오 AI 디지털허브 (2025) | 약 6천억원 |
| 고양 창릉 | 투자협약 없음 (2025.12 시의회 지적 기준) | 0 |
금액은 협약·발표 기준의 계획 규모이며 실제 집행액이 아닙니다.
기업 유치만 부진한 것이 아닙니다. 올해 6월에는 주택 쪽에서도 신호가 왔습니다. 민간 건설사와 함께 짓는 B-1블록(1,594가구, 사업비 5,047억원)이 단독 응찰로 유찰됐습니다. LH는 다시 공모를 진행하고, 안 되면 수의계약으로 전환해 연말 착공을 지키겠다는 계획입니다. 기업도 건설사도 선뜻 들어오지 않는 시기를 창릉이 지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3. 왜 창릉에는 기업이 먼저 오지 않을까
보도와 시의회 논의에서 반복해 지목되는 원인은 과밀억제권역이라는 제도의 틀입니다. 고양시 전체가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이라, 기업이 이 안으로 들어오면 취득세 중과 같은 세금 부담을 안게 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같은 수도권이라도 규제가 덜한 곳과 저울질하게 되고, 창릉의 입지 매력이 세제 불이익에 깎이는 구조입니다.
여기에 신도시 안의 사정도 있습니다. 3부에서 본 것처럼 창릉의 철도는 2030년 이후에야 도착합니다. 기업이 이전을 결정할 때 보는 것은 지금의 교통이고, 교통이 완성되기 전의 자족용지는 백지에 가까운 상태로 팔아야 합니다. 자족과 교통은 서로를 기다리는 관계라서, 어느 한쪽이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둘 다 늦어집니다. 교산의 3조원 유치가 부러운 대목은 금액보다도, 그 악순환을 끊는 첫 도장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입니다.
4. 후반전의 카드들 — 전부 계획이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성적표가 0이라고 해서 움직임까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1년 사이 고양시와 LH가 꺼낸 카드들을 확정과 계획으로 나눠 적습니다.
- 공업지역 15만 5,182㎡ 지정 (확정) — 창릉 기업이전단지 일대가 올해 초 공업지역으로 지정됐습니다. 고양시 전체 공업지역 물량이 16.6만㎡에서 32.1만㎡로 약 두 배가 된, 수도권정비계획의 벽을 공공주택특별법 특례로 우회한 결과입니다. 세제 혜택이 붙는 땅이 처음으로 생긴 셈입니다.
- 유치 업종의 구체화 (계획) — 고양시는 항공우주·UAM, 의료바이오를 유치 산업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구 남측의 한국항공대, 인접한 국립암센터라는 기존 자산과 잇는 그림입니다.
- 경제자유구역 (계획) — 2026년 신청, 2027년 지정이 목표입니다. 지정되면 세제·규제 문제가 상당 부분 풀리지만, 아직 신청 전 단계입니다.
- 시장의 직접 요청 (진행 중) — 8월 6일 신임 고양시장이 LH와 상설 TF를 만들었고, 8월 28일에는 국토부 장관에게 창릉 공업물량 6.6만㎡ 추가 배정을 직접 건의했습니다.
확정된 것은 공업지역 15.5만㎡ 하나이고 나머지는 계획이라는 것, 이 구분을 지키며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방향 자체는 일관됩니다. 세금 문제를 제도로 풀고, 업종을 좁혀서 명분을 만드는 순서입니다.
5. 이 성적표가 입주자에게 갖는 의미
자족 성적은 남의 일 같지만, 실제로는 입주자의 생활 조건을 결정합니다.
자족용지가 채워지면 창릉은 출퇴근이 지구 안에서 끝나는 도시가 되고, 비어 있으면 3.8만 가구가 아침마다 서울로 나가는 도시가 됩니다. 후자라면 3부에서 본 교통 공백기의 부담이 그만큼 커집니다. 상가와 학원가 같은 생활 인프라의 속도도 낮에 사람이 남아 있는 도시인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다만 창릉에는 다른 신도시에 없는 안전판이 하나 있습니다. 서울 경계 1km라는 위치입니다. 자족 유치가 늦어져도 “서울로 출근하기 좋은 도시”로는 성립한다는 뜻이고, 실제로 2부에서 본 청약 경쟁률은 그 수요가 이미 줄 서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자족의 성패는 창릉이 좋은 도시가 되느냐보다, 어떤 종류의 좋은 도시가 되느냐를 가르는 문제에 가깝습니다.
6. 확인해둘 것
- 창릉의 자족용지 약 130만㎡ 중 기업 투자협약은 아직 0건이라는 현재 상태를 확인했다 (2025.12 시의회 기준)
- 공업지역 15.5만㎡ 지정은 확정, 경제자유구역·업종 유치는 계획 단계라는 구분을 확인했다
- 자족 유치가 늦어질 경우 출퇴근 수요가 서울로 향하는 도시가 되고, 교통 공백기 부담이 커진다는 연결 고리를 이해했다
- 반대로 서울 인접성 덕분에 자족 없이도 주거 수요가 유지돼온 사실(청약 경쟁률)을 함께 봤다
- 향후 발표를 지켜볼 항목을 정리해뒀다 — 경제자유구역 신청 여부, 공업물량 추가 배정, B-1 재공모 결과, 첫 기업 협약
정리
창릉의 자족 이야기는 약속과 성적표의 간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판교의 2배라는 약속이 있었고, 7년이 지난 지금 협약 0건이라는 성적표가 있습니다. 원인은 게으름이 아니라 구조였습니다. 과밀억제권역의 세금, 아직 오지 않은 철도, 서로를 기다리는 자족과 교통의 악순환.
그리고 그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가 이제 막 시작됐습니다. 공업지역 지정이라는 첫 확정 카드가 나왔고, 경제자유구역과 업종 유치라는 다음 카드들이 테이블 위에 있습니다. 첫 협약이 나오는 순간 이 성적표는 다시 써야 할 것이고, 그때 이 글도 갱신하겠습니다.
한 지구를 오래 지켜본다는 것은 이런 순간을 기다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0이라는 숫자는 실패의 기록이 아니라, 아직 채워지지 않은 칸이라고 적어두겠습니다.
다음 글 예고
창릉 리포트 5부(완결)에서는 창릉의 값을 다룹니다. 남은 청약 물량과 블록별 일정, 확정분양가와 주변 시세 지도, 그리고 청약 전에 확인할 것들을 한 편에 정리합니다.